MBTI 결과가 바뀔 때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MBTI는 성격 자체를 측정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 거기서부터 자기 이해가 시작됩니다.

MBTI가 내 성격이라고 믿었던 것의 진짜 정체
솔직히 말하면, 저는 꽤 오랫동안 MBTI 결과지를 거의 신분증처럼 여겼습니다. "저 INFJ예요"라고 말하면 그게 곧 나를 설명하는 전부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다시 받을 때마다 결과가 살짝씩 달라지더니, 어느 순간엔 완전히 다른 유형이 나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의심이 생겼습니다. 이게 정말 나를 말해주는 건가.
심리학계에서는 MBTI를 기질적 성격 검사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MBTI는 지난 2~3년간 내가 사회 속에서 어떤 얼굴을 해왔는지, 즉 페르소나(persona)를 보여주는 도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페르소나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사회적 가면을 뜻합니다.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앞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가 다른 이유가 바로 이 페르소나가 상황마다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MBTI 결과가 바뀌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성격은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요. 심리학에서는 빅파이브(Big Five)라는 모델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빅파이브란 외향성, 개방성, 신경증적 성향, 우호성, 성실성이라는 다섯 가지 축으로 인간의 기질을 설명하는 성격 이론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이 다섯 가지는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으며, 살아가면서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기질로 여겨집니다. 한국인 대상 연구에서는 여기에 정직과 겸손을 더한 헥사코(HEXACO) 모델이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헥사코란 빅파이브에 정직-겸손 차원을 추가한 여섯 가지 성격 모델로, 특히 한국처럼 체면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 개인의 성향을 더 잘 포착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외향성 vs 내향성: 사람들과 함께할 때 에너지를 얻는지, 혼자일 때 회복되는지
- 개방성 vs 보수성: 낯선 경험이나 다른 의견에 얼마나 열려 있는지
- 신경증적 성향: 감정 기복이 크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
- 우호성: 타인에게 협조적이고 친절하게 대하는 경향
- 성실성: 계획을 세우고 책임감 있게 실행하는 성향
제 경험상 이 다섯 가지를 알고 나서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MBTI처럼 "나는 이런 유형이다"로 박스를 치는 게 아니라, "나는 외향성이 낮고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편이다"처럼 스펙트럼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훨씬 정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MBTI가 나를 잘 설명해준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내가 최근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줄 뿐이었고, 진짜 기질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성격은 못 바꿔도 성품은 내가 만든다
저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는 기분이 드는데, 이마저도 어쩌면 또 다른 착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계속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고, 그 과정에서 제가 붙잡게 된 개념이 바로 성품이었습니다.
성격(character)과 성품(personality virtue)은 다릅니다. 성격이 타고난 기질의 총합이라면, 성품은 그 기질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결과입니다. 쉽게 말해 성격은 재료고, 성품은 그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같은 재료로도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엉망진창인 음식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성격이 바뀌지 않아도 성품은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성품을 어떻게 가꿀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들이 제안하는 방향은 단점을 억지로 고치려 하지 말고, 장점을 더 잘 꺼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입니다(출처: NIH - 성격과 웰빙 연구). 단점은 그 부분을 잘하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꼼꼼함이 부족한 편인데, 이걸 혼자 억지로 고치려다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세심한 동료에게 검토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바꿨더니 결과가 훨씬 나아졌습니다. 단점을 보완하려는 에너지를 장점을 키우는 데 쓰는 게 효율이 훨씬 높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한 가지 더 예상 밖이었던 것은 수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성품을 발휘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좋은 컨디션이고, 그 컨디션의 핵심은 수면의 질이라는 겁니다.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사람, 즉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일수록 수면 부족 상태에서 성격의 단점이 더 두드러집니다. 저도 잠을 못 잔 날에는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런 날은 장점이 숨어버리고 단점만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성품이 좋아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가르는 핵심 요인은 개방성입니다. 여기서 개방성이란 빅파이브의 한 축이기도 하지만, 더 넓게는 내가 몰랐던 사실이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오히려 가까이할 수 있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집니다.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고집만 세집니다. 최근 잠언을 읽으면서 이 부분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지혜로운 자에게 가르치면 더욱 지혜로워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결국 그 지혜로운 자란 개방성이 높아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성경에서도 현대 심리학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면, 이건 그냥 지나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성격은 진짜 평생 안 바뀌나요?
A. 일반적으로 성격은 바꾸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고, 빅파이브 연구들도 기질적 성향은 생애 전반에 걸쳐 상당히 안정적임을 보여줍니다. 다만 성격이 고정된다는 뜻은 아니고, 변화 속도가 매우 느리고 의식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보다, 그 성격 안에서 좋은 성품을 만드는 방향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Q. MBTI 결과가 계속 바뀌는 건 왜 그런가요?
A. MBTI는 기질적 성격이 아니라 페르소나, 즉 사회적 가면을 측정하는 검사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직장 환경이 바뀌거나, 주변 인간관계가 달라지거나, 큰 사건을 겪고 나면 내가 사회에 보여주는 얼굴이 달라지고, 그 변화가 MBTI 결과에 반영됩니다. 결과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 검사가 측정하는 게 원래 유동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Q. 헥사코 검사는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A. 헥사코(HEXACO) 공식 검사는 hexaco.org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한국어도 지원됩니다. 빅파이브에 정직-겸손 차원을 추가한 검사라 자신의 기질적 성격을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MBTI처럼 유형을 딱 잘라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각 차원별 점수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처음엔 낯설 수 있지만 훨씬 정직한 자기 이해가 가능합니다.
Q. 개방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특별한 방법보다 느슨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꾸준히 접점을 만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강한 유대 관계 안에서만 머물면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끼리만 확인하게 됩니다. 반면 새로운 분야를 배우거나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몰랐던 것"과 마주치게 되고, 그 경험이 쌓일수록 개방성이 높아집니다.
결론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할 때 사람은 가장 불행해지고, 바꿀 수 있는 것을 그냥 놔둘 때 가장 허망해집니다. 성격은 전자에 가깝고, 성품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저 역시 성격의 단점을 고치겠다며 오랫동안 에너지를 낭비했는데, 지금은 그 방향이 틀렸다는 걸 압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MBTI가 아닌 헥사코로 자신의 기질을 제대로 확인해보는 것, 그다음 자신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되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잠을 잘 자는 것입니다. 거창한 자기계발보다 이 세 가지가 더 확실한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